이터널스 영화 신화와 역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이터널스(Eternals)'를 통해 인류 문명의 기원과 신화에 대한 대담한 재해석을 선보입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이 야심 찬 작품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7,000년의 시간을 아우르며, 인류 역사의 주요 순간들 속에 이터널스가 어떻게 존재해 왔는지 보여줍니다.
영화는 수많은 문명의 신화와 전설이 사실은 이터널스에서 비롯되었다는 흥미로운 설정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이카리스(리처드 매든)는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 전설의 원형이 되었으며, 세르시(제마 챈)는 마법사 서커스로 알려진 인물이었고, 길가메시(마동석)는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서사시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인류의 집단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신화적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합니다.
영화는 바빌론, 테노치티틀란(아즈텍 문명), 히로시마 등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터널스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어떻게 지켜보고 때로는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이들이 인류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장면들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연상시키며,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대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합니다.
이터널스는 "데비안트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라"는 임무만 수행해야 했기에, 인류의 전쟁이나 재앙에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이 설정은 신화 속 신들이 때때로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제공합니다. 페이스토스(브라이언 타 이리 헨리)가 인류에게 기술을 제공했다가 그것이 히로시마 원폭으로 이어졌을 때 느낀 죄책감은, 신들의 선물이 가져올 수 있는 양면성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창발' 현상을 통해 지구가 사실은 셀레스티얼 티아맛의 탄생을 위한 '알'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이는 많은 창조 신화에서 발견되는 '우주적 알' 모티프를 떠올리게 하며, 지구와 인류의 존재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티아맛이 탄생하면 지구는 파괴되고 수십억 명이 죽게 되지만, 그 에너지는 수조 명의 새로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우주적 순환의 개념은 힌두교의 창조와 파괴의 순환,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 등 다양한 종말론적 신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처럼 '이터널스'는 인류의 역사와 신화를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에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인류의 기원과 존재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서사로 확장됩니다.
다양성과 표현
'이터널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다양한 캐스팅을 선보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영화는 인종, 성별, 성적 지향성, 나이, 신체적 능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포용적인 캐릭터 구성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종적 다양성입니다. 동양인(제마 챈, 마동석), 남아시아인(쿠마일 난지아니), 아프리카계 미국인(브라이언 타 이리 헨리, 로렌 리들로프), 라틴계(셀마 하이엑), 백인(앤젤리나 졸리, 리처드 매든, 배리 케오간) 등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배우들이 주요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이는 단순한 다양성 확보를 넘어, 이터널스가 전 세계 다양한 문명과 교류해 왔다는 서사적 설정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성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이터널스'는 MCU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페이스토스는 남성 배우자와 아들이 있는 게이 캐릭터로 등장하며, 이는 마블 영화에서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등장한 LGBTQ+ 슈퍼히어로입니다. 그의 가족 관계는 자연스럽게 묘사되며, 그가 가진 기술적 천재성과 보호자로서의 따뜻함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다차원적인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또한 청각장애를 가진 마카리(로렌 리들로프)의 존재는 장애인 표현(representation)의 중요한 사례입니다.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가 연기한 마카리는 자신의 장애를 약점이 아닌 독특한 관점과 능력으로 전환시킵니다. 영화 속에서 이터널스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수화를 사용하는 모습은 포용적 커뮤니케이션의 아름다운 예시입니다.
스프라이트(리아 맥휴)는 영원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갇힌 존재로,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과 한계에 대한 흥미로운 성찰을 제공합니다. 외모는 어린이지만 수천 년의 지혜와 경험을 가진 이 캐릭터는 나이와 외모가 한 사람의 정체성과 능력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테나(앤젤리나 졸리)의 정신 건강 문제(마후드 증후군)에 대한 묘사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슈퍼히어로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취약성을 가진 캐릭터를 통해, 영화는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도 강인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처럼 '이터널스'는 다양한 형태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여냄으로써, 모든 관객이 자신과 닮은 영웅을 발견할 수 있는 포용적인 서사를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올바름을 넘어, 다양한 관점과 경험이 어우러질 때 더 풍요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도덕적 선택
'이터널스'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의무와 자유의지, 더 큰 선과 개인적 도덕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어려운 선택입니다. 영화는 절대적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도덕적 회색 지대에서 캐릭터들이 겪는 복잡한 딜레마를 다룹니다.
이터널스의 근본적인 딜레마는 그들의 존재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데비안트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믿었지만, 나중에 그들의 진짜 임무가 '창발'을 위해 인류 문명의 발전을 돕는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는 수십억 인류의 죽음을 의미하는 셀레스티얼 티아맛의 탄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진실은 각 이터널스가 자신의 존재 목적과 도덕적 신념을 재평가하게 만듭니다.
이 갈등은 특히 에이잭과 이카리스 사이의 대립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에이잭은 인류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셀레스티얼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이카리스는 자신의 임무와 셀레스티얼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를 완수하려 합니다. 둘 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옳다고 믿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세르시(제마 챈)의 여정은 특히 도덕적 성장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인류에 대한 애정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개입을 꺼렸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녀는 점점 더 인류의 가치를 인식하고, 결국에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그녀의 선택은 단순한 충성심이나 의무감이 아닌, 인류와의 깊은 유대감과 그들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드루이그(배리 케오간)의 도덕적 여정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인류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 힘을 남용한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받습니다. 그의 캐릭터는 권력이 가진 유혹과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킹고(쿠마일 난지아니)는 처음에는 인간적인 삶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쾌락주의자로 보이지만, 결국 셀레스티얼의 계획에 반대하는 큰 결정을 내립니다. 그의 여정은 개인적 행복과 더 큰 선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이터널스는 집단적으로 가장 어려운 선택에 직면합니다: 수조 명의 미래 생명을 위해 현재의 수십억 인류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보호할 것인가? 이 질문에는 쉬운 답이 없으며, 영화는 이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최종적으로 '이터널스'는 도덕적 확신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그것은 불멸의 존재들조차도 도덕적 복잡성 앞에서는 불완전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마블 영화 중에서도 특히 철학적 깊이가 돋보이는 부분으로, 관객들에게 자신만의 도덕적 나침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