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랭턴 시리즈의 완성인'인페르노'(2016)는 론 하워드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입니다. 2006년 '다빈치 코드'와 2009년 '천사와 악마'에 이어 론 하워드 감독과 톰 행크스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습니다. 첫 작품이 예수의 혈통과 관련된 음모를, 두 번째 작품이 일루미나티와 바티칸의 대립을 다뤘다면,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을 모티프로 현대 사회의 위기를 파고듭니다.
인페르노 영화 지옥 풍경
'인페르노'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중 '지옥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14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상상력을 21세기의 시각적 언어로 재현하면서, 고전 문학과 현대 영화의 독특한 만남을 선보입니다. 감독 론 하워드는 단테가 그린 지옥의 아홉 개 층을 현대의 도시 공간에 교묘하게 투영시킵니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도시들은 각각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피렌체는 단테의 고향이자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영화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의 '500인의 방'과 바사리의 프레스코화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과 권력이 집약된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두오모 성당의 돔 위에서 펼쳐지는 추격 신은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선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산마르코 성당의 지하 무덤이 중요한 장소로 등장합니다. 이곳은 단테의 지옥에서 묘사된 '제6층 지옥'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수많은 해골과 유물이 쌓여있는 음산한 분위기가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특히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지하에 숨겨진 이 무덤은, 표면적인 아름다움 아래 감춰진 어두운 진실을 암시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펼쳐지는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성당과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는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이자, 지상과 지하의 대비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6세기에 건립된 아야소피아는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 모스크로, 다시 박물관으로 변모한 역사를 가진 건축물로, 영화에서는 인류 문명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됩니다.
보티첼리의 '단테의 지옥도'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시각 모티프입니다. 이 그림은 단순한 단서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데, 특히 영화 초반 랭던의 환각 장면에서 극적으로 재해석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정적인 회화가 현대의 디지털 기술로 재현되면서, 피가 강처럼 흐르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 걸어 다니는 등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연출됩니다. 이는 단테가 묘사한 지옥의 공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영화는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들을 현대의 과학기술과 교묘하게 연결시킵니다. 바이러스가 숨겨진 장소를 찾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예술품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류의 지적 유산이자 동시에 현대 문명의 위기를 암시하는 매개체로 기능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과거와 현재, 예술과 과학, 구원과 파멸이라는 대립적 요소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어냅니다.
잃은 기억
'인페르노'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주인공 로버트 랭던의 기억상실증 설정입니다.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에서 랭던은 언제나 명석하고 논리적인 두뇌의 소유자로 그려졌습니다. 그의 박학다식함과 뛰어난 시각적 기억력, 상징을 해독하는 능력은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인페르노'에서 그는 자신의 가장 큰 무기를 잃은 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랭던의 기억상실은 단순한 플롯 장치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가 겪는 혼란과 불안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불확실성을 반영합니다. 특히 그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단편적인 이미지들 표현하자면 은색 머리를 한 여인, 검은 가면을 쓴 사람들, 피가 흐르는 거리 등은 마치 현대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파편화된 정보들과도 같습니다.
톰 행크스는 이런 복잡한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연기해 냅니다. 그의 연기는 혼란스러움과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진실을 찾으려는 의지를 균형 있게 보여줍니다. 특히 기억이 조금씩 돌아올 때마다 보여주는 미묘한 표정 변화나, 자신이 믿었던 것이 거짓임을 깨닫는 순간의 절망감을 실감 나게 표현합니다.
기억상실증 설정은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 랭던과 같은 입장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게 만듭니다. 우리는 랭던이 알고 있는 것만큼만 알 수 있으며, 그가 기억을 되찾을 때마다 함께 충격과 깨달음을 경험합니다. 이는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시에나 브룩스와의 관계는 이런 기억상실증 설정을 통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처음에는 그를 돕는 조력자로 보였던 시에나가 사실은 조브리스트의 추종자였다는 반전은, 랭던의 불완전한 기억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는 우리가 믿는 진실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생존 위기
'인페르노'는 인류의 과잉인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영화의 빌런인 베르트랜드 조브리스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닌, 인류의 미래에 대한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학자로 그려집니다. 그가 개발한 바이러스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불임으로 만들 수 있는 유전자 조작 병원체로, 그는 이를 "인류를 구원할 필요악"이라고 주장합니다.
조브리스트의 논리는 현실적인 데이터에 기반합니다. 영화는 UN의 인구 통계와 자원 고갈에 대한 과학적 예측들을 인용하며, 실제로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매 세대마다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지구의 자원은 결국 고갈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조브리스트가 선택한 해결 방식입니다. 그의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직접 죽이는 대신, 미래 세대의 탄생을 제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는 즉각적인 대량 살상이 아닌, 점진적이고 '인도적인' 방식으로 인구를 감소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이런 설정은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을 넘어, 더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합니다.
영화는 또한 과학 기술의 양면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조브리스트가 개발한 바이러스는 인류의 가장 진보된 과학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이 됩니다. 이는 현대 과학 기술이 가진 양날의 검과 같은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불어 영화는 글로벌 조직들의 역할과 한계도 다룹니다. WHO(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권력 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들이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위기를 막으려 하는 모습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반영합니다.